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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이루어주는 묘비 [기이한 이야기] *유튜브의 묘한담소 채널에서도 이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1 우리 학교 옆의 실개천을 따라 올라가면, 묘비명이 다 닳아 없어진 비석을 찾을 수 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왕래하는 사람이 잘 없긴 하지만, 또 그렇게 비밀스러운 장소까지는 아니어서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 열에 두셋쯤은 이 묘비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묘비에는 학생들이 좋아할 법한 전설 몇 개가 전해져 내려온다. 2 상사병을 앓다가 죽은 젊은이의 무덤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짝사랑 대상에게 집착하다가 범죄를 저지른 인간의 묘지라는 소문도 있다. 하여튼 이 묘비에 얽힌 이야기가 무엇이든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묘비가 간절한 사람의 사랑을 이루어준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단, 누군가를 바라는.. 2023. 10. 15.
불타버린 흉가에서 일어난 실종사건 [기이한 이야기] *유튜브의 묘한담소 채널에서도 이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1 15년 전 실종되었던 친구와 함께 흉가를 다시 찾았다. 분명 불타서 없어져 버렸던 그 흉가가 15년 전의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15년 전과는 다르게 그다지 흉물스럽게 보이지는 않았다. 15년 전 실종되었던 그 친구는 콧노래를 부르며 우리를 재촉했다. 15년 전 실종되지 않았던 우리, 그러니까 나와 엠과 제이는 군말 없이 그 친구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2 나와 엠과 제이는 오래된 친구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친해졌고, 이후로도 계속 붙어 다녔다. 그 친구와 친해진 것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그 친구는 학기 중간에 갑자기 전학 온 학생이었다. 그 때문인지 이전 학교에서 사고를 치고 온 것이라는 소문이 있기도 했다.. 2023. 10. 8.
잠에서 깨어나니 홀로 야산에 버려져 있었다 [기이한 이야기] *유튜브의 묘한담소 채널에서도 이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1 눈을 뜨니 아무도 없었다. 잠기운 때문에 멍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나는 엠의 승용차 뒷좌석에 홀로 누워 있었다. 조수석에서 이것저것 음악을 틀던 제이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엠과 제이는 어디로 간 것일까. 우리는 분명 양양 해수욕장으로 서핑을 하러 가던 길이었는데, 이곳은 어딜까. 스마트폰으로 현재 위치를 확인해보려 했지만, 신호가 먹통이어서 전화도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2 바깥은 어두웠고 주변에는 거대한 나무들밖에 없었다. 나무들은 하나같이 기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햇볕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일까.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있는 나무가 하나도 없었다. 마치 하늘을 .. 2023. 10. 1.
가려움의 제국 [기이한 이야기] *유튜브의 묘한담소 채널에서도 이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1 나는 오늘 우리 집 강아지를 죽였다. 평소에 깨나 예뻐하던 녀석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개털이 알레르기를 일으켜서 가려움을 유발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까. 누구나 아는 사실을 외면하면서 몇 년간 강아지를 키워온 우리 가족이 원망스러웠지만, 용서해주기로 했다. 더는 우리 집에 개털이 날리지 않으니까. 내 끔찍한 가려움증도 이제는 나을 것이다. 2 나는 강아지 사체를 동네 뒷산에 묻었고 가족들에게는 산책 중에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유난을 떨며 종일 동네를 쏘다녔다. 강아지 이름을 부르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며, 녀석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당연히 우리 가족 중 누구도 강아지를 찾지는 못했다. 녀석은 이미 죽었으니까. .. 2023. 9. 10.
현관문이 열리는 악몽 [기이한 이야기] *유튜브의 묘한담소 채널에서도 이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1 요즘 계속 똑같은 악몽을 꾼다. 악몽이라고 해야 할까, 가위눌림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튼 매일 밤 그 꿈에서 벗어나느라 잠을 설친다. 나는 작은 원룸에 살고 있는데 침대 발치에 바로 현관문이 보이는 구조다. 현관문을 향해서 침대를 두면 좋지 않다는 미신을 듣긴 했지만, 방이 워낙 좁아서 침대를 이렇게 둘 수밖에 없다. 2 미신을 믿는 편은 아니었지만, 현관문을 바라보다가 잠이 드는 것은 썩 좋은 기분은 못 되었다. 내가 잠이 들면 현관문 바깥의 불길한 무언가가 들이닥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오래된 원룸의 낡은 현관문은 그다지 든든한 방패막이가 못 될 것 같았다. 그런 불안감을 무의식중에 쌓다 보니, 잠을 못 자게 되었고 잠들.. 2023. 9. 3.
어느 날 고양이가 되었다 - 카프카의 변신에 사죄함 [기이한 이야기] *유튜브의 묘한담소 채널에서도 이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1 어느 날 불쾌한 꿈에서 깨어난 나는 내 몸이 한 마리의 작은 고양이로 변한 것을 깨달았다. 내 몸이 온통 푹신하고 북슬북슬해서 이불 속을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발버둥 치며 겨우 이불을 빠져나와서 침대 끄트머리에 섰다. 몸이 가볍고 활기찼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기분일까. 당혹스러웠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2 좁은 상자에 몸을 끼워보기도 하고 의미 없이 허공의 먼지를 쳐다보기도 했다. 마치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모든 풍경과 모든 감촉이 신비스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배가 고파졌다. 내 방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 방문을 열고 부엌에 가면 무언가 먹을만한 것이 있겠지만, 고양이의 몸으로는 쉽지 않았다. 가족.. 2023. 8. 27.
칼부림 범죄자의 최후 [기이한 SF] *유튜브의 묘한담소 채널에서도 이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1 여러 사람이 한 남자를 둘러싸고 깔깔대며 웃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 남자를 손가락질하며 비웃고 어떤 사람은 그 남자에게 모욕적인 조롱을 던지고 있다. 군중에게 둘러싸인 남자는 VR기기를 눈에 쓰고 꼴사납게 팔을 휘두르고 있다. 마치 자신이 대단한 무기라도 손에 쥐고 있는 것처럼 의기양양하지만 동시에 혹시 누군가에게 제압당해서 얻어맞을까 봐 잔뜩 겁에 질려 있다. 하지만 그의 손은 그를 둘러싼 그 어떤 사람에게도 닿지 못하고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보며 더욱 비웃고 욕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조롱을 들을 때마다 모멸감과 열등감에 시달리며 더욱 꼴사납게 팔을 휘두른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군중들에게 더욱 웃음거리가 될 뿐이었다. 2 “지금 .. 2023. 8. 13.
버려진 아기신발을 함부로 주워오면 안 되는 이유 [기이한 이야기] *유튜브의 묘한담소 채널에서도 이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1 얼마 전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로 계속 의욕이 없다.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였는데, 결국은 뭐 이렇게 되었다. 그 친구의 탓도 나의 탓도 아니었다. 그저 흔하디흔한 현실적인 문제 탓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현실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는데, 막상 그 친구가 곁에 없으니 현실이 내게 무슨 의미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억지로 회사에 나가고 억지로 웃고 억지로 회식 자리에서 고주망태가 되고 하면서 그저 살고 있다. 그 친구에게 다시 연락하거나 새로운 여자를 만나거나 할 생각도 못 하고 그냥 그러고 있다. 2 그러다가 이번에 연차를 길게 붙여서 2주 정도의 휴가를 얻게 되었다. 미세먼지도 없는 선선한 봄날이었지만 나는 종일 누워서 그저 천장의.. 2023. 8. 6.
사람을 먹는 꽃 [기이한 이야기] *유튜브의 묘한담소 채널에서도 이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1 요즘 나는 혼술을 자주 한다. 회사 기숙사에서 혼자 처량하게 술을 마시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서 돈을 쓰고 시간을 쓰고 사회적 가면을 쓰느라 에너지를 쓰는 것에 지친 탓이다. 사실 누군가를 만나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다. 매일 회사와 집만 반복하는 교대근무 생활을 하다 보니 친구도 가족도 만나기가 어렵다. 교대근무의 피로에 찌든 회사 사람들만 보느라 매일이 지겨운 탓에 결국은 또 혼술로 마음을 달래게 된다. 2 혼술을 하면 마음이 느긋해져서 평소에는 1초 만에 넘길 법한 유튜브 영상도 나름 진득하게 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자주 보는 알고리즘과는 연관 없는 영상이 하나씩 뜨기도 했다. 그날도 과하주를 마시고 취해서 유튜브를 보고.. 2023. 7. 29.
정신병원에서 만난 부모님이 나를 낳기까지 [기이한 이야기] *유튜브의 묘한담소 채널에서도 이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1 아버지에게 최근 치매가 왔다. 치매에 걸리기 전의 아버지는 과묵하고 무뚝뚝한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말도 많이 하고 잘 웃기도 해서 오히려 보기가 좋다. 특히 나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서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를 요즘은 자주 해주신다. 전에는 어머니에 관해 이야기는커녕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굴었는데 말이다. 2 돌아가신 어머니는 정신병원의 간호사였다고 한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정신병원에서 잡부로 일하다가 어머니와 만나 사랑에 빠지셨다고 한다. 비록 치매 탓에 이야기가 횡설수설해서 그 시절 두 분의 로맨스가 정확히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내가 평생 보아온 그 아버지의 어떤 모습보다도.. 2023. 7. 23.